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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과의 주름살


한참이나 해매였다. 풋사과에 주름살이 있는지? 과연 설익은 또는 미숙한 상태의 사과에 주름살이 있는지? 나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풋풋할수록 팽팽하다는 지식밖에 없다. 혹시나 태초의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출산될때의 모습 정도가 풋 에 대한 주름살 이 연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읽어 내려가는 과정과 그 결과는 나의 예상을 전혀 빗나가게 했다. 제목을 내려 읽은 내 과오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화자는 어물전의 귀퉁이에 있는 한 노파를 만난다. 1연에서 보이는 노파는 생선 가계가 물려 있는 어물전에서 사과를 파는 행위를 통해 상품의 측면에서 변두리에 있고, 어물전 귀퉁이라는 변두리에 있으며, 탱글탱글 윤기가 나는 과일의 변두리인 못생긴 과일을 쌓는 변두리에 있으며, 젊음이라는 단어의 외곽 지대인 늙음에 존재한다. 화자의 시선은 공간과 시간선상의 소외받은 노파가 못생긴 과일을 정성스레 탑을 쌓는 모습이 신성한 손길로 고정된다 뱀 껍질이 풀잎을 쓰다듬듯 정성스런 손길에 시선을 고정한 화자는 못생긴 落果를 사오지만 신 것 때문에 입덧을 했던 추억을 가진 아내의 핀잔 속에 식탁으로 냉장고 위로 세탁기 뒤 선반으로 자리없이 떠돌게 된다. 어느 틈엔가 잊었던 -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 사과를 발견한 화자는 온 몸의 진액을 빼앗긴 것 같은 사과에 버리기 편하게 과도를 들이댄다. 생각없이 한 편의 과육을 찍어 입에 댄 화자는 마르고 비틀어진 과육 한 편에서 단물을 맛보게 된다. 더욱 놀라운 발견은 쭈글쭈글 주름살이 패인 사과가 씨앗까지 빚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화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 과육의 육즙이 빠진 주름살진 풋사과와 정성스레 과일 탑을 쌓던 노파를 연결하게 된다. 여기서 화자는 있을까 를 통해 이런 노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고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시적화자의 주변에는 주름살이 생길만큼 갱엿 처럼 쫄고 있는 젓가슴을 가진 노파, 즉 씨앗을 빚은 노파를 희망에 대한 의구심을 의문형 문장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화자의 현실과 이상과는 거리감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주름살이라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현상적인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노파의 주름살이 시간의 범위 밖에 위치하는 내부로 가는 길 을 만들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것은 쪼글쪼글하게 힘없이 늘어진 살이 아니라 바람과 맞하는 솔개 연의 살처럼 - 동음이의어 살리기는 재미있다 - 자아의 내면을 버팅기는 강인함을 지닌 힘줄이 된다.
우리의 손끝에 편안하고 정든 모든 일상들과 닳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시의 향기로 피어오른다. 묵은 간장이 제 맛이 나는 것을 확인하듯 너무 익숙하여 눈길이 가지 않는 것들에서 시인의 그들이 가진 독특한 맛을 우려낸다.

1. 자두나무
2. 풋사과의 주름살
3. 대를 쪼개다
4. 세수
5. 고구마
6. 길
7. 새
8. 빈 병의 얼굴
9. 기와 지붕 위 오동나무
10. 송장메뚜기
11. 쇠를 먹는다
12. 살찌는 집
13. 빈자리
14. 잠
15. 플라타너스
16. 개미
17. 장평이발소
18. 마디
19. 곰팡이
20. 배꼽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