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억극장

기억극장. 책제목이 그렇다. 이 책은 사진과 글이 공존하는 그런 책이다. 사진을 보면 참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타난다. 정말 좋은 기분이 드는 사진, 글들이다. -오래된 집- 집에 대한 이야기. 사진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글들이 있다. 왠지 마음에 드는 글이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에는 역사에 관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비유가 하나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삼촌은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영국인보다 더 품격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최고의 엘리트이지만 페인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는 주인공들에게 말한다. “역사란 한밤중에 서 있는 오래된 집 같은 거다. 등불을 모두 밝히면 그 안에 있는 조상들이 웅얼거릴 거야.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이제 이해할 수 없단다. 우리 마음이 전쟁으로 침범 당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이겼지만 가장 나쁜 전쟁. 그 전쟁이 우리의 꿈까지 옭아매었고, 우리 꿈을 다시 꾸게 하였다.”그러나 삼촌 역시 자기 자신의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과거의 잘못에 또 하나의 불행을 하나 더 얹었을 따름이다.] 도시남자라서 시골 생활을 잘 모른다. 그저 외할아버지가, 그리고 이모들이 지방에 살고 있다보니 방학 동안에 잠깐 놀고 올 뿐이라서 시골생활은 잘 모른다. 소도 잘 모른다. 본 적은 어렸을 적 잠깐 동안뿐. 염소도 방학 동안에 잠깐 볼 분이었다. 아마도 그 소가 살다가 팔렸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다음 방학에 갔을 때에는 그나마도 없었다. 그저 텅 빈 소가 살던 외양간뿐이었다. 그래도 외양간을 지키던, 할아버지 댁을 지키던 개가 오래도록 있었을 뿐이었다. 「소의 행방을 묻다」 음, 행방이라. 나에게 물어도 잘 모르는데…. [‘한국적인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의 촬영 목록에 소는 빠지지 않았다. 소라는 존재는 농경문화의 상징이자 땅에 매여 살아온 민중의 또 다른 자아로서 ‘한국적인 풍경’ 속에 의식되지 않은 채 늘 포함되어 있었다. 소는 그 존재가 풍경에서 사라져간 모습을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고 지나치며 넘어갔을 듯싶다. 그렇게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갑자기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고 싶다. 그 영화 본 기억도 없지만 그 영화를 통해 ‘소’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보고 싶어진다. 소와 그 옆에 남자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흘러가는 강물일까? 그 위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일까? 부러워 하는 것 같은 그런 사진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마지막 글이 마음에 걸린다. “소는 여전히 철조망 바깥에 내몰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옛날에는 철조망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철조망 바깥에 있는 것 같다. 이 철조망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해석한 건 우리의 삶에서 멀리 내몰렸다는 의미로 들린다. 같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   사진과 글이 잘 어울리는 책 한권이었다. 사진은 기억을 되살려주는 마법 같은 것 아닐까. 정말로 카메라 한 대 들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지은이는 이 사진과 소설가 조세희가 1980년 광주 이후에 슬프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위 해 쓴 책( 침묵의 뿌리 )에 이끌려 이 책을 썼다. 사진은 아픈 기억을 건드려 책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제공해주었고 책은 그러한 글쓰기의 전범이 되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사진가 이갑철이 1980년대에 찍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기억에 관해, 결국에는 그 기억이 축적되어 만들어낸 오늘 우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롤로그

1 굽은 다리로 걸어가는 사람들
- 오래된 집
- 소의 행방을 묻다
- 소실점의 자리
- 고궁을 나서며

2 시대를 기억하는 세 가지 방식
- 어떤 몸짓
- 의상을 입어라
- 시대의 공기

3 옛날 여자와 옛날 남자
- 가족이라는 형식
- 어른과 아이
- 해변의 가족

4 유년의 유원지
- 어항이 부서지던 오후
- 서정시를 배우는 시간
- 운동장 조회
-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5 가면, 얼굴들
- 가면들
- TV 속의 남자
- 한낮의 퍼레이드
- 얼굴들, 헐벗은

6 징후들
- 서울역에서 만난 어머니와 아들
- 기억나지 않음
- 서부영화의 첫 장면
- 론리 스트레인저
- 미래라는 낱말

에필로그